[백도] 환절기 by 개떡










백현아.
너는.
우리집의.
희망이야.


우리 엄마는 매일 아침 내가 학교에 가기전 내가 맨 넥타이를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시면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때마다 그 주름진 손을 한 번 감싸 쥐고 웃는다. 알아요, 다녀오겠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학교엔 약간 걸음을 재촉하면 10분, 느긋하게 걷는다면 15분 정도가 걸린다. 교실문을 열면 몇몇 자리를 채워 앉아 떠드는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나에게 인사를 했고 나는 늘 그랬듯이 그 인사를 받아주며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시작한다. 아침조회 시간이 되자 언제나 각 잡힌 양복을 입은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 저번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다. "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의 한숨소리와 탄성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반 1등은,


 " 백현이다. "







환절기

w. 개떡








몸이 약하신 우리 엄마는 결혼 10년 만에 나를 가지셨다고 했다. 태어나서부터 과잉보호다 싶을 정도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았고, 유복한 살림덕에 부족함 없이 자랐다. 딱 하나 있는 외동이라 그런지 부모님은 나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다. 나도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어릴적부터 최대한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라도록 노력했다. 초등학생땐 방과후에 친구들이랑 축구도 해보고 싶었지만 늘 교문앞까지 마중나오시는 부모님 때문에 같이 하자는 친구들 틈에서 빠져나오기 일쑤였고 그건 중학교때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이 되자 명문대에 입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성적은 부모님의 바람에 미쳤고, 지금 두 분이 나를 보며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걸로 됐다.




 " 전교에서도 1등이라며? "
 " … "
 " 대단하다. "


그 녀석을 처음 안 건 학기 초였다. 엇 비슷한 키에 같은 줄에 지정 됐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나를 1학년 때 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너 진짜 대단하다. 그 녀석이 날 보고 처음 뱉은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아이들은 많았는데 어쩐지 그 녀석의 말에 쑥스러워졌다. 그 녀석은 나를 따라다녔다. 같은 또래지만 내가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그 뜻 자체인 것 같아서 나도 그 녀석이랑 가깝게 지낸 것 같다.


점심시간에 내 책상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은 녀석은 정석책을 펼쳤다. 백현아, 너 이거 알아? 녀석이 손가락으로 문제를 가리켰다. 나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어 샤프를 쥐었다. 이건 말이야. 내가 노트 뒷 장에 문제를 풀어내자 녀석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다시 지우개로 공식들을 지워내고 다시 찬찬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내가 답답해서 못 견뎠을 텐데 아,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였어? 하며 되묻는 녀석의 얼굴에 답답함도 느끼지 못 했다. 마지막으로 답을 적자. 녀석이 커다란 눈을 반으로 접으며 웃었다. 자기 정석책을 내 책상 위에서 치우고 무릎에 올려둔 녀석은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나는 태연히 내가 풀던 문제집을 다시 가운데로 놓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나는 문제를 푸는 내내 신경이 녀석에게로 쏠렸다. 내가 문제를 풀었다 지우개로 지워냈다를 반복하자 녀석이 물었다.


 " 미안, 내가 보고 있어서 방해되지? "


두꺼운 정석책을 들고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해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냥 있어도 돼. 내 말에 녀석이 정말이냐며 되 묻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모습에 다시 샤프를 쥐며 그 말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말고사 기간 야자도 없는 날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였다. 백현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그 녀석이였다. 교과서 몇 개를 품에 안은 녀석이 뜸을 들이다 말했다. 너 집에 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내 쪽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 도서관 밤까지 열어준다는데, 같이 공부할래? "


오늘은 피곤해서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녀석은 내가 거절을 할 줄 안 것 같다. 안도를 하며 그 녀석이 그럼 도서관으로 가자며 앞장을 섰다. 도서관에 들어오니 공부하는 아이들과 책을 읽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최고 구석자리에 녀석과 나란히 앉아서 가방을 풀었다. 두꺼운 정석책을 꺼낸 녀석이 얇은 연습장도 옆에 꺼냈다. 문제 푸는데 열중인 녀석을 보고 나도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처음 올 땐 창 밖이 노을 때문에 주황빛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다 저물어 깜깜해졌다. 도서관에는 이제 테이블 건너 한 두 사람만이 남았다. 옆을 쳐다보니 녀석은 어느샌가부터 딱딱한 책을 베개삼아 잠을 자고 있었다. 볼이 눌려 약간 웃음이 났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을 자고 있던 터라 나는 마음껏 녀석의 얼굴을 감상했다. 짙은 눈썹에 감은 두 눈은 뜨면 초롱초롱한게 내가 살면서 본 눈 중에 제일 예뻤다. 코나 입이나 딱 떨어지는 생김새를 넋놓고 처다보는데 감은 눈이 떠지려 하기에 얼른 고개를 숙여 책을 읽는 척을 했다.


 " 백, 현아. 지금 몇 시야? "


입꼬리에 살짝 흐른 침을 손등으로 닦은 녀석이 주위를 살핀 후 물었다. 나는 책상위에 올려둔 핸드폰 홀드키를 눌렀다. 9시 10분. 내 말에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이제 가자고 얼른 베개로 삼았던 정석책을 가방에 넣었다. 야자를 안 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배로 어두운 학교를 녀석과 나왔다. 길거리를 드문드문 비추는 가로등불을 보며 말 없이 걷는데 녀석이 입을 뗐다.


 " 백현아, 오늘 남아서 같이 공부해준거 고마워. "
 " 응 "
 " 내가 중간에 자버렸지만… "


그 녀석은 머쓱해 하며 웃었다.


 " 근데 넌 날 어떻게 생각 해? "
 " 뭘 어떻게? "
 " …어, 그니까 내가 처음에 막 너한테 뭐라고 하지? 들이댔잖아. "
 " 아 그거? "


좋았어, 덕분에 나도 너랑 친해진 것 같고. 내 말에 그 녀석은 다시 쑥쓰러운 듯 웃었다. 아, 넌 모르겠지만 내가 1학년 때 너 처음보고 되게 멋있었다고 생각했거든 친해지고 싶었는데 2학년 되고 딱 같은 반이 된거지. 녀석은 바라면 이루어진다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학교 앞 사거리까지 신이나 떠들었다. 반대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녀석이 아쉬운 낯을 보였다. 집으로 걸어가는데 잘가라며 손을 들어 흔들어주는 모습이, 도서관에서 책을 베고 자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학교에 도착해 나는 녀석의 자리를 확인했다. 녀석의 뒤통수가 보여 나는 굳이 그 녀석 자리를 지나쳤다. 어, 백현아 안녕.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인사를 받아 주고 다시 빙 돌아 내 자리에 앉았다. 한 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그 다음부터는 미치도록 그 녀석한테 신경이 쓰였다. 나는 그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저 녀석을, 좋아하나? 말도 안된다. 녀석과 나는 남자였다. 그럼 내가 녀석을 신경 쓰여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 야, 넌 일주일 전 부터 정석책만 붙잡고 있냐? "
 " 수학 70점 넘으면 용돈 올려준댔어. "
 " 넌 용돈 말고 키나 좀 올려라. "


재혁이였다. 구재혁은 반에 한 두 명 쯤은 있는 껄렁껄렁한 자식이였다. 여기저기 애들에게 시비를 걸 듯 장난을 치는 녀석인데 오늘만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그 녀석에게 친한 척 장난을 걸었다. 나는 턱을 괴고 그 쪽을 바라봤다. 구재혁이 녀석에게서 책을 뺏었다. 그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을 뺏으려고 했고 키가 큰 재혁은 책을 번쩍 들었다. 나는 어쩐지 그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 순- 낙서뿐이네~ "
 " 내 놓으라고! "
 " 이게 뭐야 박현? 박, 백, 뭐라 쓴거야? 좋, "


구재혁이 책에 고개를 박으려고 할 때 녀석이 재빨리 책을 뺏었다. 구재혁은 뒤에서 녀석의 등과 어깨를 툭툭쳤다.


 " 야, 잠깐 보지도 않았어 글씨 좀 잘써라 "


녀석이 내 쪽을 힐끔 쳐다봤다. 덕분에 우리 시선이 마주쳤고 녀석은 구재혁이 놀려서 그런건지, 귀가 빨개져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그대로 책상위로 엎어지는 녀석을 보며 나는 오래 괴고 있어 저린 팔을 풀고 책을 팔랑팔랑 넘겼다. 어쩐지 아까 쓰렸던 속이 가라앉았다.



나는 지금 내 감정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남자를 좋아해본적은 없다.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내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 한 번도 없었다. 석식시간 야자가 시작하기 전 나는 녀석을 찾아가 어깨를 두드렸다.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녀석은 고개를 들었다가 나인걸 확인하고 당황해했다. 나는 그저 손짓으로 밖을 가리키고 뒷문으로 나왔다. 지금 녀석이 따라오고 있나, 학교 뒷 편으로 가 뒤를 돌아보니 그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고 내 뒤를 따라왔다. 녀석은 어색해 보였다. 내 눈을 좀처럼 마주치질 못했다.


 " 할 말 있어. "


날 쳐다보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불쾌했다. 내가 할 말이 있다 하자 그 녀석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나는 속으로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그냥 지금 내 심정을 말하기로 했다.


 " 니가 자꾸 신경쓰여. "
 " … "
 "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널… "
 " … "
 " 좋아하는 것 같다. "


난생 처음 뱉는 말이었다. 내 말에 그 녀석은 정말이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 당황한듯 시선이 불안정했다. 뒷걸음질을 쳤다가 다시 다가왔다가. 그 모습이 거절의 의미 같아서 아까 내 고백이 창피해질 무렵 그 녀석은 띄엄 띄엄 입을 뗐다.


 " 정, 말…? "


아주 힘겹게 한 말같다.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당황해서 녀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녀석은 땅에 주저 앉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녀석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약간 힘을 주어 당겼다. 벌떡 일어난 녀석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웃으며 엉덩이를 털었다. 


 " 그럼, 우리 사귀는거야? "







녀석의 집에 와봤다. 오래 된 주공아파트였다. 최고 꼭대기 층에 산다는 녀석은 엘리베이터에서 15층을 눌렀다.


 " 꼭대기층에 살아서 옥상에 자주 가, 여름에 옥상 올라가면 별이 엄청 잘 보여. "
 " 그래? "
 " 근데 난 높은 곳을 무서워해서 가장자리는 못 가. "


그 녀석이 멋쩍게 웃었다. 나는 녀석의 집에 따라들어왔다. 맞벌이를 하신다는 부모님은 집에 계시지 않았다. 내 가방을 받아다가 자기 방에 가져다 놓기에 나는 녀석의 방이 궁금해져 따라 들어갔다. 아담한 크기의 방 벽엔 녀석의 어릴적 사진이 걸려 있었다. 웃는 모습이 지금과 꼭 닮았다. 나는 녀석이 가져다 준 주스잔을 들고 침대에 앉았다. 내 옆에 따라와 앉은 녀석은 손바닥 보다 약간 큰 사진첩을 가져왔다.


 " 이거, 나 어릴때다. "
 " 귀엽네. "
 " 나 초딩때만 해도 반에서 제일 컸거든? 근데 중학교때부터 안컸어… "


슬프다며 곧 우는 시늉을 하는 녀석을 가만히 쳐다봤다. 나는 사진첩 위에 놓인 녀석의 손 위로 내 손을 포갰다. 그 녀석의 시선이 밑으로 가자 나는 그 녀석의 입에 내 입을 맞췄다. 그 녀석이 당황해 굳는게 다 느껴졌다. 나는 처음 하는 거라 그냥 녀석의 입술 위에 가만히 내 입술을 대고만 있었다. 감은 눈을 살짝 뜨면서 입을 뗐다. 그러고 녀석을 쳐다봤는데 언제 감은건지 감긴 녀석의 두 눈도 그제야 슬쩍 떠졌다. 우린 아무말이 없었고 나는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틀고 입술을 포개고 그 녀석의 손 위를 포갰던 손으로 그 녀석의 뒷 목을 감쌌다.



그 녀석과 사귀면서 방학 동안 나는 그 녀석의 집에 종종 놀러가기도 했고 종종 우리집에 녀석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다 어느새 끝엔 내가 녀석을 벽에 밀어 놓고, 기대 놓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입을 열고 혀를 섞기도 했다. 그러면 가끔 녀석은 달뜬 숨소리를 뱉었다. 오늘 그 녀석을 집에 데려온 이유는 공부를 알려달라는 말 때문이었다. 집에 와 접이식 탁자를 폈다. 작은 탁자에 마주보고 책을 펴놨다. 고개를 숙이고 문제 푸는 것에 열중을 하는데 뒤척이면서 스치는 발이나 헛기침 소리가 신경이 쓰였다. 애초에 나는 녀석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공부를 못했다. 나는 책을 덮었다. 그 녀석은 책 덮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나는 녀석을 붙잡았다.






 " 기다려줘서 고마워 "


그 녀석은 음악시간에 졸다가 지적을 받고 뒷 정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창 밖을 보다가 뒤를 쳐다봤다. 녀석이 웃으며 다가왔다. 나를 따라 고개를 빼고 운동장을 쳐다봤다. 나는 예전에 녀석이 한 말이 생각나 녀석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러자 악 소리를 내며 그 녀석은 양 손으로 창틀을 잡았다. 눈이 커져 벌벌 떠는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지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다 사과를 하자 녀석은 정말 놀랐다며 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 나 진짜 높은덴… 진짜 너무해… "
 " 진짜 미안해 "


어떻게 하면 화 풀래? 내 말에 녀석은 좀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제 볼을 들이댔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짧게 입을 맞추고 떼자 그 녀석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는 그 손을 치우고 고개를 틀어 그 녀석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야, 진짜 대박이야! 아침조회시간 담임이 고3 대비 겸 조회 대신 한 명씩 진로 상담을 할 때였다. 나는 교무실에 앉아 내내 진학에 대한 것과 지금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실로 올라가려는데 같은 반 애가 내 등을 치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되묻기도 전에 녀석은 반으로 쏙 들어갔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자 교실 뒤편엔 아이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반은 이런 저런 말소리가 섞여 시끄러웠다. 나는 궁금해져서 틈 가까이 다가갔는데 놀랍게도 그 녀석이 아이들의 틈에 껴 있었다.


 " 그니까 너랑 어제 키스하고 있던게 누구였냐고? "
 " 정말 학교에서 키스를 했어? "
 " 아니 너 진짜 게이냐? "


아이들의 얘기 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구재혁은 답답한 듯 그 녀석의 어깨를 잡아챘다. 야, 빨리 말해 어차피 이제 소문 다 날거야. 나는 아이들을 살폈다. 더러워,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애들. 신기하다, 며 웃는 애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백현아ㅡ 누가 내 어깨를 쳤다. 방금전 복도에서 내 등을 쳤던 애다.


 " 옆 반에 어떤 애가 어제 음악실 갔다가 쟤랑 누가 키스하고 있었다고 소문냈어. "
 " …누구랑? "
 " 다른 애는 뒤통수라 못 봤다는데, 아무튼 쟤는 확실하대. "


나는 꽉 쥔 주먹에서 땀이 차는게 느껴졌다. 여러 애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입을 꾹 닫고 있던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친게. 녀석은 울 듯한 얼굴이었다. 곧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렸고 몇 몇 아이들만이 이동수업 교과서를 챙겼다. 나는 그 녀석의 눈을 쳐다보다 시선을 피해버렸다. 책 챙길 정신도 없이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수업을 빼먹은 녀석은 그대로 집에 간 모양이었다. 구재혁을 비롯한 몇몇 애들이 도망간걸 보면 확실하다. 며 떠들어댔다. 그 녀석의 이야기는 하루종일 우리반의 가십거리였다. 나는 그 녀석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녀석한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서도, 그 다음날이 되서도 녀석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 녀석이 아파서 못 온다고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작게 정말 아파서 일까? 라고 말했고 그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터졌다. 영문을 모르시는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며 교탁을 몇 번 두들기곤 교실을 나갔다. 곧 금방 싫증을 내는 아이들에게서 녀석에 대한 이야기가 뜸해졌다. 그 녀석이 학교에 나온 건 그 후로 일주일이 더 지나서였다.


이제 2학기 막바지였고, 출석일수 때문인지 뭔지 그 녀석이 학교에 나왔다. 나는 그 녀석의 등장에 반가워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일단 괜찮아 보여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전 처럼 그렇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은연중에 드러냈다. 그 녀석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쉬는시간이나, 복도를 지나갈때나, 녀석과 눈이 마주쳤지만 언제나 먼저 시선을 돌렸다. 며칠 학교를 나오던 녀석은 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 슬픈 소식이 있다. " 


방학 중 보충수업을 받았다. 몇 몇 아이들은 방학에도 나와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거나 잠을 잤다. 나는 묵묵히 문제를 풀어내는데 선생님께서 들어 온 것이다. 어두운 낯에 교탁을 두어번 두드리니 엎드려 잠을 자던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일어났다. 잠에서 덜 깬 짝궁을 보고 선생님을 쳐다봤다.


 " 우리반 애가 어제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


그 소리에 꾸벅꾸벅 졸던 짝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끝나고 다 같이 장례식장에 가자는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교실을 나갔다. 걔지? 걔야. 걔 밖에 없어. 주위 목소리에 나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설마 그 녀석일까. 보충 빼먹고 안나오고 있는 애들은 그 녀석 말고 서너명이 더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내 불안에 떨다 반 아이들과 장례식장에 도착해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턱이 딱딱 소리를 내며 떨기에 입을 꾹 닫고 사진을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그 녀석이 맞았다. 그 녀석의 집에 찾아갔을 때 종종 뵙던 그 녀석의 어머니도 있었다. 나를 알아 보신 듯 왔냐며 나에게 다가왔다.


 " 학교도 간다고 나가서 다른데를 다녔나봐, 담임선생님 전화 받고 안나가는 걸 알아서 억지로 보냈는데 "
 " … "
 " 백현아, 너는 뭐 아는거 있니? 얘는 그럴 애가 아닌데… "
 " … " 
 " 알잖니, 우리 애는 그런데서 뛰어 내릴 용기 같은 거 없는 애야. "


 녀석의 어머니는 곧 소리내어 우셨다. 녀석의 아버지가 고맙다며 이만 가보란 손짓을 했다. 반 아이들은 하나씩 국화꽃을 들고 녀석의 사진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꽉 쥐고 있던 손에서 땀이 차서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나는 그 녀석의 장례식장에 있을 용기가 안 나 재빨리 빠져나왔다. 나는 걸음을 천천히 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기사며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며 전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영문도 모른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나는 곧 창피해져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그 녀석의 생일이기도 했다.







 " 아들, 합격했다며? "


나는 다시 공부에 몰두했다. 가만히 넋을 놓고 있으면 그 녀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학년이 되자 그 녀석은 점점 아이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대로 공부를 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학에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그렇게 살면, 부모님이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대학 발표가 떴고 합격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기쁜일이라며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신다고 했다. 나는 큰 짐을 덜어 낸 기분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그대로 침대위로 누웠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1월 11일. 얄궂게도 시간이 딱 맞았다.


나는 1년이 넘어서 다시 그 녀석이 살던 낡은 주공아파트에 왔다. 익숙하게 15층을 눌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차가운 냉기가 도는 복도는 어쩐지 추워보였다. 나는 낡아서 망가진 잠금장치를 쉽게 열어 옥상으로 올라갔다. 찬 바람이 불었다. 나는 아파트 난간 곁으로 갔다. 허리밖에 오지 않는 난간 넘어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찔할 정도로 꽤 높은 높이였다. 전에 3층짜리 음악실에서 미는 시늉을 했을 때 엄청 놀라 기겁을 하던 녀석이 생각났다. 다리까지 후들거리던 겁쟁이 녀석이 여기까지 올라와 뛰어내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찬 바람이 부는 날에 얼마나 고민했을지. 그런데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고 그 녀석 보다는 겁이 없었다. 허리쯤 오는 난간을 넘어 눈을 감았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늘 그 녀석이 떠올랐다. 만날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다. 경수야, 그때 모른척해서 미안하다, 고.








덧글

  • 요를레이 2013/07/31 11:55 # 삭제

    아진짜ㅜㅜㅜㅜㅜㅜㅜ변백현진짜...아.... 우리경수높은거무서워하는데.. 어떻게그렇게모른척하고... 진짜... 눈물나가지고..
  • 2013/07/31 15:37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으ㅡ 2013/07/31 21:24 # 삭제

    왜다주겨여.....ㅜㅠㅠㅠㅜ
  • ㄴㄴㅇ 2013/09/23 22:37 # 삭제

    ㅋㅋㅋㄲ
  • 2013/08/01 02:20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빅구 2013/08/02 00:07 # 삭제

    아 대박ㅠㅜ 백현이도 불쌍하고 경수도 불쌍해요ㅠㅜ 진짜ㅠ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ㅠ
  • 개떡님개짱 2013/08/02 01:43 # 삭제

    저 지금 이거 읽는데 눈물이 나가지구... 내일 눈부으면 어떡해요 책임져요!!!ㅠㅠ 브금은 왜이렇게 잘어울리는거야 진짜ㅠㅠ
  • 됴됴 2013/08/04 19:06 # 삭제

    아련아련...ㅁ7ㅁ8 개인적으로 이런 먹먹한분위기 너무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ㅠㅜㅠㅠㅠㅠㅜㅜㅜㅜㅜㅠㅠㅠㅠ
  • 자몽 2013/08/09 22:35 #

    변배켜ㄴ 개꺄끼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간 본 단편 중 진짜 제일 최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bbbbbbb
  • ㅜㅜㅡ 2013/09/23 22:38 # 삭제

    나같아도 모른척할것같아서 이렇게라두 배켜니랑 공감대형성ㄱㅋ ㄱㄱㄱ
  • 2013/09/27 23:10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개떡 2013/11/17 23:01 #

    ...?! 이 댓글.. 왜때문에 지금봤죠...? 텍파 그냥 복붙 가능하니까 갠소용으로 만들어서 쓰셔도 되요ㅠㅠㅠㅠ 엉아아앙엉 제가ㄴ너무....늦게 확인했네요
  • 노끄노크 2013/11/06 16:46 # 삭제

    b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짜유ㅜㅠㅜ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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